나의 이야기

[스크랩] [23편]갈고닦은 글재주 마음껏 펼친 뒤 뿌듯...단종 애사 얽힌 관풍헌 나와 청령포로...

김참봉 2010. 11. 16. 12:02

 

청령포

 

병연은 회심이 만연한 기분으로 어깨를 들어 기지개를 펴고 나서 지필묵을 필낭에 넣고 글이 담긴 화선지를 구겨지지 않게 가볍게 두루마리로 말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앉은 틈사이로 조심스럽게 걸어 나오며 주위를 훑어 보았다.

어느 사람은 몇 자 적어놓고 손바닥 위로 턱을 고이고 시상을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고, 어떤 사람은 화선지가 까맣도록 먹물로 지우고 쓰고 하느라 쩔쩔매는 표정이 얼굴에 역력했다.

"저 주제에 백일장엔 왜 나온담."

"그러기 말이외다. 어설픈 글에 감당을 못할 주제라면 백일장엘 나오지 말아야지. 쯧쯧쯧."

앞으로 걸어 나가는 병연의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병연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병연이가 글을 감당할 수 없어 몇 자 긁적거리다가 자신이 없어 백일장을 퇴장하는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었다.

병연은 의젓이 걸어 나가 관풍헌 높은 뜰 위에 앉아 있는 사관 앞에 글을 제출하고 관풍헌 밖으로 나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지금까지 방안에만 앉아 글공부만 하다가 누구에게도 겨뤄보지 못한 글재주를 마음껏 휘둘러 본 뿌듯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그는 되돌아서서 대문 위의 '관풍헌'이라 쓴 현판을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긴장했던 마음에서 풀어나자 비로서 이곳이 영월 동헌(東軒)의 객사(客舍)로서 어린 단종(端綜) 임금이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 곳임을 떠올렸다.

아직도 정오가 되려면 더 있어야 했다.

결과가 발표되려면 해가 서산마루에 걸쳐야 될 터였다.

그는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잠시 망설이다가 단종의 유배처인 청령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서강에 있는 청령포는 가까웠다.

어림잡아 담배 한두 대 남짓 피어물고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청령포에 다다르자 갑자기 절벽을 이루며 그 밑으로 푸른 물이 서쪽 골짜기에서 흘러나와 우측으로 돌아 아래 골짜기인 서쪽으로 역류하듯 흐르면서 그 사이에 조그마한 섬같이 만들어진 곳이 청령포였다.

동,남,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험준한 기암절벽으로, 일명 도산(刀山)이라고도 부르는 육육봉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출입이 불가능한, 이른바 천연으로 된 감옥이었다.

조선6대 왕인 단종이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上王)으로 있다가 사육신(死六臣) 사건이 있은 후 1457년 6월(세조3)에 세조(世祖)의 명으로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돼 이곳 청령포로 유배됐다.

단종이 이곳으로 유배되던 해 여름에 큰 홍수가 나 청령포에 물이 차오르자 급기야 단종은 청령포에서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그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됐던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자 세조는 끝내 단종이 살아있는 한 계속 복위운동이 일어날까 두려워 노산군에서 서인(庶人)으로 강봉시켜 당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인 왕방연(王邦衍)으로 하여금 사약을 받도록 해 단종은 17세의 어린나이로 죽임을 당했다.

단종의 시신도 세조의 명에 의해 천 길 낭떠러지 위에서 동강 물로 던져졌고, 또한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이 내려졌다.

당시 세조의 서슬이 시퍼래서 동강에 던져진 단종의 시신을 거두려는 자가 없었다.

이에 영월에서 행정을 보좌하는 호장(戶長)이었던 엄흥도(嚴興道)가 야밤을 틈타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동강과 서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몸을 숨기며 달려가 떠내려 오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지게로 운구해 영월의 서북쪽에 있는 동을지산(冬乙支山)에 암장하고 자취를 감췄다.

이곳이 훗날 1698년(숙종24)에 묘호를 단종으로 추증하고 장릉(莊陵)이라는 능호를 부여받은 곳이다.

병연은 강둑에서 청령포를 내려다보고 지나간 단종의 슬픈 역사를 들추다가 점심때가 됐음을 알고 필낭에 함께 넣은 도시락을 꺼내놓고 점심밥을 먹기 시작했다.

평일보다 아침밥을 일찍 먹은 탓인지 아내가 정성들여 싸준 밥맛이 일미였다.

그가 점심식사를 끝내고 강을 내려다보니 강가에 매어 놓은 조그마한 나룻배에서 사람이 어슬렁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병연은 필낭을 한 쪽 어깨에 메고 부리나케 강가로 내려갔다.

 

 

 

 

출처 : 난고 김삿갓 기념화사업회
글쓴이 : 임종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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