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38편]병연의 글솜씨를 보고 감탄한 안응수는 자신의 집에서 함께 공부할 것을 청한다.

김참봉 2010. 11. 16. 12:07

 

 

 

"참으로 선생의 글은 달필(達筆)입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쉼 없이 시상이 이어잘 수 있는지!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모인 사람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병연을 능필(能筆)을 보며 감탄에 마지않었다.

"과찬이십니다. 여러 선생의 글은 눈앞에 보이는 바다 같은 한수(漢水:한강)를 그렸고, 저넘어 겹치는 산과 산을 끌어 모아 글로 쓰셨는데 실로 넓으신 안목의 글입니다. 그에 비하면 저야 손에 잡고 있는 붓을 보고 두서없이 쓴 글이니 난필(難筆)입니다."

병연이 겸손하게 말을 하자 옆에 앉은 신석우가 대구를 한다.

"아닙니다. 우리들이 쓴 글처럼 산과 산은 걸어서도 며칠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선생이 쓴 글은 몇 천 년을 뛰어넘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누구나 붓은 글을 쓰는 한갓 도구로만 생각 했는데, 그 붓으로 고금의 천만권의 글을 썼음을 말하는 선생의 시상에 놀라울 뿐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안응수가 대화의 방향을 바꾸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보이는 아차산응 넘으면 서울이 가까운데 지금 서울로 가시는 길인가요?"
"그러합니다."

"서울에 혹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병연은 안응수의 물음에 난처했다.

실은 현재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실권자의 가까운 친척이 서울의 장동에 수두룩한데, 안응수의 질문을 받고 조금은 착잡했다.

그러나 병연은 집에서 떠날 때 벼슬 높은 집안사람을 만나려고 떠난 것은 아니었다.

"서울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집에서 글이나 읽다가 바람이나 쐴 겸 길을 떠나오는 길입니다."

안응수는 병연의 말이 끝나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건넸다.

"이명씨? 한 가지 청을 넣을까 하는데....."

"말씀 하십시오."

"학문도 높고 시문에도 능하신데, 우리 서로 배우는 입장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혹여 외람됩니다만 저의 집에 가셔서 학문도 논하고, 시문도 논하면서 함께 했으면 하는데 어떠신지요? 여기 모인 친구들도 우리 집에 모여 과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선생도 우리와 같을 터, 우리 함께 손잡고 학문에 매진해 봅시다."

안응수의 말이 끝나자 일행은 모두 박수를 치면서 환영에 마지않았다.

병연에겐 천만 뜻밖의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명문대가의 자제들일 테고 이런 귀인을 찾아 떠났던 것이 그의 뜻이 아니었던가.

병연은 안응수의 제의를 마다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짚고 넘어 가야했다.

"하지만.....?"

"아아,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침식 문제는 우리 집에서 할 터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안응수는 병연의 심중을 알고 그가 머뭇거리는 말을 따라 시원스럽게 말을 건넸다.

하루의 해가 남서쪽으로 뻗은 아차산 능선을 넘으려 할 때, 일행은 두대의 마차에 나누어 타고 서울을 향해 달렸다.

일행이 서울의 관문인 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을 들어섰을 땐 어둠이 짙게 깔려 고래등같이 이어진 기와집 대문에서 새어나오는 장명등 불빛이 그들이 지나는 길을 훤히 비춰주고 있었다.

병연은 번화한 서울 장안을 달리면서 아련한 지난날을 더듬어 보았다.

어머니인 함평 이씨가 이곳 서울로 떠나던 전날 들려준 말에 의하면,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해마다 양주의 본가에서 마차를 타고 서울 장동에 있는 대소가 땍을 찾았다는 것으로 보아 병연은 적어도 다섯 번은 서울 장동을 다녀갔다는 말을 해주었다.

어쨌든 병연에겐 너무나 어릴 때 다녀갔던 길이아 서울 장안의 거리는 모두가 새로웠다.

다만 기억 속에 서울의 관문인 흥인지문과 커다란 기와집들이 어렴풋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일행은 흥인지문을 지나 한참을 달려와 목멱산(木覓山:지금의 남산)이 가까운 곳에서 마차를 세우고 서로 헤어졌다.

병연이 안응수의 안내로 따라간 집은 장명등이 밝게 걸린 큰 대문으로 들어서는데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좌우로 배치돼있어 명문대가임을 첫눈에 알 수 있었다.

 

출처 : 난고 김삿갓 기념화사업회
글쓴이 : 임종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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