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40편]조반을 마치고 난 안응수 부친은 병연에게 합격점을 주었다. 상것이 아님을 인정한 것이다.

김참봉 2010. 11. 16. 12:07

 

 

 

그러나 병연은 허전했다.

이는 곁에 같이 있으면서 학문을 하게 될 안응수에게는 이렇다할 조상에 대해 내세울 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에서였다.

병연은 전전긍긍하다가 문득 말문을 열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른은 외조부님뿐이옵니다."

"외조부. 그래 함자가 어떻게 되시는가?"

"네. 이 유자수자이옵니다."

"이유수라?"

안응수 부친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유슈! 그 어른이 외조부란 말인가?"

"네. 그러하옵니다."

"생각이 나는구먼. 그 어른께선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지내셨느니라. 내가 지금은 승정원(承政院)에 있네만, 그 당시엔 병조(兵曹)에 있을 때 그 어른을 기억하고 있지. 서북의 난 때, 그 어른께선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우신 어른이셨지."

안응수 부친은 위아래를 구분하면서 정중히 말했다.

서북 난은 홍경래의 난을 말함이다.

병연은 서북난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아차!'하고 공연히 외조부 말을 꺼내어 집인 내력이 들통이 나지 않을까 가슴이 철렁했다.

"듣기로는 학문도 출중하고 시문에도 능하다고 했는데, 글공부는 누구에게서 익혔는가?"

"네. 집안 문중에 글 잘하시는 어른에게서 글을 배웠사옵니다."

적당히 얼버무린 답변이었다.

"음, 그랬군. 시문에 능하신 분인가 보구나."

병연이 답변에 전전긍긍하는 사이 조반상이 들어왔다.

외상으로 차려진 밥상은 안응수 부친 앞에 놓여 졌고, 겸상은 안응수와 병연의 사이에 놓여졌다.

안응수 부친은 수저를 들면서,

"자. 어서 조반들 들어라."

"네."

안응수와 병연은 겸상으로 조심스럽게 수저를 잡고 조반을 들기 시작했다.

실은, 안응수 부친은 집밖에서 처음 만나 함께 공부하겠다고 데려 온 병연의 거동을 처음서부터 유심히 살펴보았던 것이다.

조반을 마치고 난 안응수 부친은 병연에게 합격점을 주었다.

인물이나, 행동이나, 말 하나하나의 언행이 도리에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상것이 아님을 인정한 것이다.

안응수 부친은 복경과 병연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모처럼 훌륭한 학우를 만났으니 마음 다져먹고 글공부에 임하도록 하여라."

실은 이 집에서 문객으로 허락이 떨어진 셈이다.

"감사하옵니다. 어르신의 말씀을 조금도 헛되이 없이 명심하겠사옵니다."
병연은 머리를 깊이 숙여 말을 하고, 깊은 숨을 가늘게 내쉬었다.

안응수 부친은 조반을 마친 후 등원 준비를 하느라 서둘렀고, 안응수와 병연은 사랑방에서 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글방으로 들어갔다.

안응수는 뒤따라 들어오는 병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훌륭하신 외조부님이 계셨군요."

병연은 대답대신 고개만 살짝 숙여 보였다.

어쨌든 그에게는 훌륭하신 외조부님 때문에 그의 신상에 적지 않은 체면이 서서 다행한 일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병연은 순간적으로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만일 안응수의 부친 앞에서 친할아버지의 명함을 비췄다면, 그 즉시 불호령을 내려 하인배를 시켜 매질을 당했을 테고, 그들에게 끌려 대문 밖으로 내쳐졌을 것이 자명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병연은 한숨을 내쉬며 글방을 둘러보았다.

"서책들이 많습니다."

병연은 북쪽 벽에 세워놓은 책장을 바라보며 조반 전에 했던 말처럼 한마디 덧붙였다.

"네. 서책들은 많이 있지요."

안응수는 대답을 하고는 북쪽 벽에 붙은 두 짝으로 된 벽장문을 활짝 열어 보였다.

제법 큰 벽장이었다.

외벽은 처마 끝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넓이는 방 한 칸 넓이였고, 그 큰 벽장 속엔 모두가 서책들이 가득이 쌓여 있었다.

우리나라 서적과 중국 서적을 구분하여 정리되어 있었다.

 

출처 : 난고 김삿갓 기념화사업회
글쓴이 : 임종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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