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소군의 원망(昭君怨)
昭君怨 소군원(왕소군의 원망) / 東方虬(동방규)
昭君拂玉鞍 소군불옥안 왕소군 옥안장에 치맛자락 스치며
上馬涕紅頰 상마체홍협 말에 오르니 붉은 두 뺨에 눈물 적시네..
今日漢宮人 금일한궁인 오늘 한나라 궁녀가
明朝胡地妾 명조호지첩 내일 아침 흉노의 첩이 되는구나..
漢宮豈不死 한궁기불사 어찌하여 한나라 궁에서 죽지 못하고
異域傷獨沒 이역상독몰 이국 땅 외로운 죽음을 슬퍼하노라..
萬里馱黃金 만리타황금 만리 길에 황금을 실어 보냈지만
娥眉爲枯骨 아미위고골 고운 모습은 앙상한 뼈가 되었네..
廻車夜黜塞 회거야출새 밤에 수레를 돌려 변방을 나오려 하지만
立馬皆不發 입마개불발 모두 말을 세우고 떠나지 못하게 하네..
共恨丹靑人 공한단청인 그림 그린 이를 원망하며
墳上哭明月 분상곡명월 밝은 달 아래에서 무덤에 곡하노라..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옷에 맨 허리끈 저절로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가는 허리 몸매를 위함은 아니라오..
*拂(불):떨다 스치다 涕(체):눈물 頰(협):뺨 明(명):다음 밝다 明朝(명조):내일 아침(다음날 아침) 豈(기):어찌 傷(상):다치다 슬퍼하다 馱(타,태):짐을 실다 爲(위):하다 만들다 黜(출):내치다 떠나다 皆(개):모두 緩(완):느슨하다
*전한 원제는 宮廷畫家(궁정화가) 모연수에게 궁녀의 생김새를 그림으로 그리게 한 적이 있었다. 궁녀들은 원제의 恩寵(은총)을 받기 위해서 모연수에게 성의를 표시해서 실물보다 예쁘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요즘 말로 하면 補正作業(보정작업)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王昭君(왕소군)은 형편이 어려워서 請託(청탁)을 하지 않았다. 모연수는 왕소군을 더 못생기게 그리니 그녀는 원제를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북쪽의 匈奴族(흉노족)은 和親(화친)을 이유로 궁녀를 보낼 것을 요구했다. 원제는 그림책 중에서 제일 못생긴 왕소군을 흉노족에게 보내기로 했다.
전한 원제(元帝,BC76~BC33)는 흉노 땅으로 가게 된 날에야 왕소군을 처음 만나고서는 깜짝 놀랐다. 왕소군은 자신이 본 궁녀 중에서 제일 예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 사이에 이미 약속을 했기 때문에 왕소군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우에게 혼인준비를 위해 3일 정도가 더 필요하다고 말미를 얻어 왕소군과 사흘 밤낮을 함께 하였다. 결국 왕소군을 흉노 호한야 선우(呼韓邪 單于, ?~BC31 재위BC58~BC31)를 따라 오랑캐 땅으로 보낸 다음 격노한 원제는 초상화를 조작한 모연수를 사형시켰다고 한다.
왕소군은 한나라와 흉노 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장안을 떠났다. 장안을 떠나던 날 왕소군은 ‘낙안(落雁)’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부모 형제가 있는 고향과 이별하고 홀로 먼 북쪽으로 떠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왕소군이 〈출새곡(出塞曲)〉을 노래하자 마침 남쪽으로 날아가던 기러기가 왕소군의 미모에 취해 날갯짓하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간 왕소군은 늘 고국 한나라를 그리며 시름에 쌓여 몸이 야위고 허리띠가 느슨해졌다. 보통의 여자들 같으면 낭군을 생각하고 날씬한 몸매를 위해 관리하느라고 그렇다고 하겠지만 자신은 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시의 속뜻이다. 이 비운의 여인을 위해 후대에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 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인이 그를 哀惜(애석)해 하는 시를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동방규(東方虯)의 이 작품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특히“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못지않게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도 옛날에 언어 遊戲(유희)로 많이 회자(膾炙) 되었던 句節(구절)이다.
*왕소군(王昭君): 한나라 원제 때의 궁녀였으나 흉노와의 친화정책을 위해 흉노왕 호한야선우에게 시집가서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 뒤 호한야가 죽자 흉노의 풍습에 따라 왕위를 이은 그의 정처 아들(자기가 낳은 아들이 아님)에게 재가하여 두 딸을 낳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동방규(東方虬):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624~705 재위690~705) 연간 좌사(左使) 등을 지낸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