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14편]남루한 차림의 어머니와 상봉

김참봉 2010. 11. 16. 12:00

 

 

 

병하와 병연이가 곡산의 김성수 집으로 온지도 벌써 세 번째의 봄이 지나고 있었다.

햇수로 따지면 2년하고도 몇 개월이 더 지난 셈이다.

그동안 형제는 열심히 서당을 다녔고, 그러는 사이 천자문, 동몽선습의 진도가 마무리단계에 이르렀다.

다만 여기까지 배우면서 가르치는 훈장의 품위는 예전에 집에서 훈장을 모셔다 가르칠 때와는 전혀 달랐다.

비록 천한 노비의 자식으로 생각했을지는 몰라도 이곳 고을에서 땅마지기나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향리(鄕吏)나 토호(土豪) 따위의 자식들은 글공부를 못해도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병하와 병연, 그리고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몇몇 학동들은 잘해도 시큰둥하고, 훈장이 묻는 글자를 더듬거리면 회초리를 들고 매질부터 해댔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런 경우도 가끔 있었다.

어려운 글자를 지적해 쓰는 순서와 그 뜻을 설명해달라고 하면 훈장은 물끄러미 글자를 들여다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당황한 표정을 숨기는 대신 얼굴을 붉히며 '배우는 녀석들이 그것도 모르느냐?'며 윽박지르며 화를 내기가 일쑤였다.

이는 자신도 모르는 글자의 질문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일관해오는 행동이었다.

세도정치판으로 들어선 조선조 후기의 부조리가 어느곳에서나 판을 치는 마당에 어설프게 글줄이나 읽은 하급선비들이 출세를 하려해도 부조리가 난무하는 과거시험에 연줄이 없어 응할 수 없고, 또 하나의 수단인 매관매직에도 눈독을 들여 보았으나 이를 받쳐주는 재정이 따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시골 곳곳을 파고들어 밥벌이 터로 서당이나 차리고 '훈장입네'하고 거들먹거리며 학자행세 하는 곳이 부지기수였다.

이곳 곡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편파적인 훈장에게 글을 배우는 등 이런 서당환경을 2년이 넘도록 겪으며 형 병하는 날이 갈수록 공부에 대한 실증마저 느꼈다.

반면 병연에게는 지금의 훈장이 주는 행동이 어쩌면 오래오래 기억됐다가 먼 훗날 훈장들에게 조롱과 야유를 부릴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서당의 분위기 속에서 병하는 집에 와서도 공부하려는 의욕이 떨어져 겨우 한 번 정도 읽고 쓰고는 밖에 나가 밭둑 위에 매어놓은 누렁이 암소를 풀어놓고 풀을 뜯기거나 아니면 낫을 들고나가 꼴을 한 망태기 베어 등에 지고 소를 앞세워 들어오곤 했다.

그러나 동생인 병연이는 몇 번이고 읽고 쓰고 하여 글자를 익힌 다음 붓을 놓았다.

이러한 병연이의 공부습관은 서당에 가서 훈장에게 매를 모면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2년 전 양주의 집에서 헤어질 때 어머니와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젠 봄도 다해 날씨가 덥게 느껴졌다.

그는 서슴없이 외양간벽으로 다가가 삿갓을 꺼내들고 마당 한가운데로 나와서 머리 위에 써보았다.

어른용이라 머리가 쑥 들어간 탓도 있지만 삿갓의 가장자리가 가려져 평평한 마당과 서있는 자신만이 보였다.

푸른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

병연이는 삿갓을 쓴 채 한 바퀴 둘러보아도 삿갓 속은 자신만의 세계였다.

이때였다.

삿갓 밖의 세계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병연아!"

병연이는 삿갓에 가려진 채 사립문께서 자기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삿갓을 벗어들었다.

사립문 안으로 들어선 여인, 그는 어머니였다.

"어머니!"

병연이는 달려가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아름다우셨던 어머니의 옛 모습이 아니었다.

곱게 입으셨던 그런 비단옷도 아니었다.

 

 

출처 : 난고 김삿갓 기념화사업회
글쓴이 : 임종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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