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6대조부..13세 신천공(諱생해)할아버지

김참봉 2019. 7. 4. 16:51

김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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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해(金生海, 1512년 ~ 1558년)는 조선중기 문신으로 자는 지혼(之渾), 본관은 (신)안동이다. 아버지는 시강원문학 평양서윤(平壤庶尹)을 지내고 이조판서(吏曹判書) 대제학(大提學)에 추증(追贈)된 김번(金璠)과 어머니 정경부인(貞敬夫人) 남양홍씨(南陽洪氏)사이에서 1남2녀중 외아들로 1512년(중종7년)출생 하였다.

생 애[원본 편집]

음직으로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보직되었다가 희릉참봉(禧陵參奉)으로 옮기고 관례에 따라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에 승진되었다.

1537년(중종32년) 26살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에 제수되었고 그후 사섬시(司贍寺) 내자시(內資寺) 전생서(典牲署)의 주부(主簿),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통예원인의 겸 한성부참군(通禮院引儀 兼 漢城府參軍)을 지냈다.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을 거쳐 1541년(중종36년) 5월 호조좌랑(戶曹佐郞)이 되었다. 같은해(1541년) 7월 29일에는 정랑(正郞) 권겸이 좌석상에서 "김생해는 분수에 넘치는 사치스런 옷을 입고 스스로 호걸인 체한다"고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그후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을 거쳐 장례원사의(掌隷院司議), 형조정랑(刑曺正郞) 그리고 금산군수(錦山郡守), 신천군수(信川郡守)를 지냈다. 명종 13년(1558) 戊午 4월29일 향년 47세로 타계 한 뒤 아들과 손자들의 현달(顯達)로 증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증직되었다.

배위는 증정경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완산이씨) 경명군의 장녀 이연환(李連環)으로 정덕(正德) 경오년1510년 10월 21일에 태어나 만력(萬曆) 신묘년1591년 9월 6일 향년82세로 졸하였다. 친정아버지는 경명군(景明君) 이침(李忱=成宗大王의 제9男)이고, 처조부(妻祖父)는 성종(成宗)이며, 처조모(妻祖母)는 숙의(淑儀)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외조는 첨정 증찬성(僉正 贈贊成) 윤첩(尹堞)으로 본은 파평(坡平)이다. 묘는 남양주 와부읍 덕소리 석실 서윤부군(庶尹府君:아버지 김번)의 묘소 동쪽 축좌에 합장하였다. 갈(碣)은 좌의정 임당 정유길(鄭惟吉)이 찬하고 좌찬성 퇴계 이황(李滉)이 썼다. 표(表)는 현손 공조참판 김수증(金壽增)이 찬하고 음기(陰記)를 아울러 썼다.

김생해는 일찍이 중종(中宗)의 부마(왕의 사위) 물망에 까지 올랐다. 물론 초간에 그쳐 부마가 되지는 못했지만 마침내 성종의 아들 경명군(景明君) 이침(李忱)의 사위가 됨으로서 왕실의 일원으로 편입되기에 이른다. 문벌가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혼(國婚)이나 왕실(王室)과의 통혼이 있어야 하는 당시의 관행을 생각한다면 김생해의 혼인은 장동김씨(신안동김씨)의 성장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참고문헌: 安東金氏文獻錄, 壯洞金氏家門의 成長과 繁榮)

가족관계[원본 편집]

  • (고조부) 봉화현감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
  • (증조부) 한성부판관 김계권(金係權) -이조판서 예문관대제학 제평공 권맹손(權孟孫)의 사위
  • (종증조부) 사간원대사간 성균관대사성 도승지 증이조판서 김계행(金係行)
  • (조부) 사헌부감찰 영천군수 사헌부장령 김영수(金永銖)
  • (종조부) 세조~연산군까지 국사(國師) 등곡,황악산인 학조(學祖)대사 본명 김영형(金永衡)
  • (종조부) 사헌부감찰 합천군수 김영전(金永銓)
  • (종조부) 진사 봉사 김영균(金永鈞)
  • (종조부) 합천군수 수원부사 김영추(金永錘)
  • (아버지) 시강원문학 평양서윤 증이조판서 대제학 김번(金璠) -경기관찰사 한성부윤 홍심(洪深:1398-1456년)의 증손녀와 결혼
  • (삼촌)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 삼당 김영(金瑛)
  • (삼촌) 찰방 형조좌랑 수군절도사 김순(金珣)
  • (장남) 삼가현감 증영의정 김대효(金大孝)
    • (양자) 좌의정 증영상 청음 김상헌(金尙憲)
  • (차남) 군기시정 증이조판서 김원효(金元孝)
    • (손자) 형조참판 증좌찬성 휴암 김상준(金尙寯)
  • (삼남) 돈녕부도정 증영의정 사미옹 김극효(金克孝) -좌의정 임당 정유길(鄭惟吉)의 사위
    • (손자) 우의정 증영의정 선원 김상용(金尙容)
    • (손자) 장단부사 증좌찬성 금시재 김상관(金尙寬)
    • (손자) 진사 광능참봉 김상건(金尙謇) -무후(젊은나이에요절 후손없음)
    • (손자) 좌의정 증영의정 청백리 청음 김상헌(金尙憲) -김극효의 네째아들로 백부 김대효(金大孝)의 양자로 입후(출계)
    • (손자) 형조참의 경주부윤 청백리 김상복(金尙宓)
      • (증손) 동부승지 증영의정 동림 김광혁(金光爀)
      • (증손) 동지중추부사 증영의정 운수거사 김광찬(金光燦) -김상관의 둘째아들로 숙부 김상헌(金尙憲)의 양자로 출계(입후)
      • (증손) 형조판서 한성판윤 죽소 김광욱(金光煜)
      • (증손) 사헌부감찰 진위현령 김광위(金光煒
      • (증손) 이조참판 부제학 수북 김광현(金光炫)
      • (증손) 돈녕부도정 김광환(金光煥)
        • (현손) 한성부좌윤 공조참판 곡운 김수증(金壽增)
        • (현손) 영의정 퇴우당 김수흥(金壽興) -김광찬의 둘째아들로 백부 김광혁(金光爀)의 양자로 출계(입후)
        • (현손) 영의정 문곡 김수항(金壽恒)
        • (현손) 호조참판 지돈녕부사 김수홍(金壽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