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시대 풍속화

김참봉 2020. 10. 9. 12:11

세상을 살아가는 데 공감능력은 중요하다. 상대의 생각이나 기분, 상황이나 아픔에 공감한다는 것은 대화와 소통을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화가 브리튼 리비에르(Briton Riviere, 1840~1920)는 교감과 공감이란 주제를 표현하는데 탁월했다.

화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이어 4대째 화가가 됐고 그의 아내 역시 화가였다. 열두살때부터 전시를 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인물이나 풍경도 그렸지만 사람과 함께 있는 반려동물을 가장 많이 그렸다. 특히 섬세한 표정과 몸짓으로 주인과 교감하는 반려견 그림으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중 이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화면에는 파란 드레스를 입은 어린 소녀와 하얀 개가 등장한다. 

낮에 무슨 말썽을 피웠는지 여느 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벌을 받았다. 잠자리에 가기 전에 아이는 뾰로통해져서 문 앞 계단에 앉아 있다. 꾸지람을 들어 서운한데다 일찍 자야 한다는 게 싫은 모양이다.

어차피 잠은 자야 하는데, 한두 시간이라도 일찍 자라고 하면 그게 왜 그리 싫은지... 온종일 놀아도 놀 시간이 모자라는 게 어린이들의 하루다.

그림에서 어두운 난간과 무거워 보이는 나무 문은 다가오는 잠의 시간을 상징하는 듯 하지만, 화사한 양탄자가 덮인 계단은 계속 놀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아이는 잠과 놀이의 경계에 앉아 샐쭉해져 있다. 아이의 푸른 옷이 아이가 얼마나 골이 나 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푸른색이 차가운 느낌을 주듯 화가 난 아이의 마음에도 찬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흰 개 한 마리가 다가와 이렇듯 차가워진 아이의 마음을 따뜻이 녹여 주려 합니다. 주인 아가씨가 '삐쳐 있는' 게 보기 안쓰러웠던 것이다. 턱을 아이의 어깨에 괴고 몸을 밀어붙인 흰 개는 무척 충성스러워 보인다. 이 집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개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이렇게 개가 몸을 바싹 붙이고 애교를 부리는데 어떻게 계속 골만 내고 있을 수 있겠는가?

아이는 곧 화를 풀고 개에게 뽀뽀를 해 주거나 껴안아 주고는 잠옷으로 갈아입으러 갈 것이다. 개의 몸짓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집은 사랑이 넘치는 집이다. 아버지의 벌도 결국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아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화가는 어디서 이렇게 정이 넘치는 그림의 소재를 얻었을까? 물론 화가 자신의 집이다. 그림 속의 여자 아이는 바로 화가의 딸 밀리센트이다. 딸이 꾸지람을 듣고 골이 났을 때를 잘 보아 두었다가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친구처럼 서로 교감하는 어린 소녀와 개의 사랑스런 모습은 보는 이들을 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