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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야우중(秋夜雨中) 가을비 내리는 밤에

김참봉 2021. 9. 24. 11:37

추야우중(秋夜雨中)   가을비 내리는 밤에

 

가을 바람에 괴로워 애써 읊어도

세상에 내 마음 아는 이 없구나..

깊은밤 창밖에는 비가 내리는데

등잔 앞에 내 마음 만리를 달려가네..

 

秋風唯苦吟  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秋風(추풍) : 가을 바람   唯(유) : 오직    吟(음) : 읊다   苦吟(고음) : 괴로이 시를 읊조림

世路(세로) : 세상살이, 세상 살아가는 길, 처세의 방법    少(소) : 적다 부족하다 여기서는 ‘없다’는 뜻

知音(지음) : 자기의 마음 속을 알아 주는 사람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를 친구인

종자기(鐘子期)가 잘 알아 주었다는 중국의 고사에서 나온 말)    窓(창) : 창문

三更(삼경) : 한밤중, 밤 23시~ 01시 사이, 자시(子時), 병야(丙夜)

萬里心(만리심) : 마음은 아득한 곳(만리)에 가 있음.   여기서 ‘만리(萬里)’는 심리적 거리감으로

‘만리심(萬里心)’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마음을 의미함.

 

*백아절현(伯牙絶絃) :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 사람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연주했고 종자기(鍾子期)는 (백아의 연주를) 잘 감상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탈 때 그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종자기는 “훌륭하다. 우뚝 솟은 그 느낌이 태산 같구나.”라고 했고, 그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종자기는 “멋있다. 넘칠 듯이 흘러가는 그 느낌은 마치 강과 같군.”이라고 했다.   백아가 뜻하는 바를 종자기는 다 알아맞혔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더 이상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知音)이 없다고 말하고 거문고 줄을 끊고 죽을때까지 연주하지 않았다.

 

*최치원(崔致遠,857~ ?)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해부(海夫)이며, 시호는 문창(文昌)이다. 신라 말 삼최(三崔) 중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6두품 출신으로서 868년 12세의 나이로 당에 유학하여 6년 만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절도사 고병(高駢)의 막하에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당 전역에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귀국 직후 당에서 쓴 글을 모아 헌강왕에게 바쳤던 《계원필경(桂苑筆耕)》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개인 문집으로 꼽히며,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난랑비서(鸞郎碑序)》는 신라 화랑도의 사상적 기반을 말해주는 자료로서 주목받는다.

 

이 시는 서거정의 “동문선” 권19 에 실린 작품으로 통일 신라 말기의 문장가 최치원이 쓴 5언 절구의 한시이다. 최치원은 6두품 출신으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신라의 정치 개혁을 위해 의견을 제시했으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가야산에서 은거하다가 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이러한 최치원의 생애를 고려해 볼 때 창작 시기에 따라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창작 시기는 최치원이 당나라에 머무는 동안으로 보기도 하고, 신라로 돌아온 이후로 보기도 하는데, 전자로 본다면 타국에서 소외받는 이방인으로 쓸쓸하게 지내던 최치원이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후자로 본다면 고국에 돌아왔지만 자신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어 좌절한 지식인이 세상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을 표현한 것으로 파악된다. 육두품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작가의 처지나, 방랑 생활을 하며 가야산에서 은거했던 말년의 행복을 고려하면 후자의 관점으로 본 지식인으로서의 좌절감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