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거사의 시골 집을 방문하다
가을 구름 어둑하고 온 산이 적막한데
낙엽은 소리 없이 땅에 가득 붉구나..
시내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돌아갈 길을 물으니
아~ 몰랐구나 내가 그림 속에 있는 것임을..
訪金居士野居 방김거사야거
秋陰漠漠四山空 추음막막사산공
落葉無聲滿地紅 락엽무성만지홍
立馬溪橋問歸路 립마계교문귀로
不知身在畵圖中 부지신재화도중
居士(거사): 벼슬을 하지 않고 자연에 묻혀 속세를 멀리하는 선비 野居(야거): 시골집 秋陰(추음): 구름 낀 가을하늘 漠漠(막막): 막막하다 쓸쓸하고 고요하다 空(공): 비다 적막하다 無聲(무성): 소리 없다 滿地紅(만지홍): 온 땅에 가득 붉다 立馬(입마): 말을 세우다 溪橋(계교): 계곡(시내) 다리 問歸路(문귀로): 돌아갈 길을 묻다 不知(부지): 알지 못하다 身在(신재): 몸이 ~에 있다 畵圖中(화도중): 그림 가운데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김거사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어느덧 시냇가 다리 앞에 와 섰다. 올 때에는 집을 찾느라 보지 못한 늦가을 오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구름낀 쪽빛 하늘에는 구름이 몽실몽실 떠 있고 사이의 산은 인적 없이 텅 빈 듯 고요하다. 바람 없는 적막 속에 한 잎 두 잎 소리 없이 낙엽은 지고 있다. 삼봉집(三峰集) 권2에 실려있는 칠언절구로 허균(許筠)은 삼봉의 이 詩가 “영롱하고 자유로워 넉넉히 당시(唐詩) 수준에 들어간다.” 라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