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구 김진사
옥구에 사는 김진사가
내게 옆전 두 푼을 던져 주네..
한 번 죽으면 이런 수모 없으련만
이 한몸 살아 있는게 평생에 한이 되네..
沃溝金進士 옥구김진사
與我二分錢 여아이푼전
一死都無事 일사도무사
平生恨有身 평생한유신
沃溝(옥구): 현재 군산시에 통합된 조선시대 옥구현(沃溝縣)으로 지방관(수령) 직급은 종6품 현감이었다
與(여): 주다 與我(여아): 나에게 주다 分(분.푼): 나눌 분 화폐(무게.길이)단위 푼 1냥(兩)=10전(錢)=100푼(分)
都(도): 모두 都無事(도무사): 전혀 일이없다 有身(유신): 몸이 살아있다
*옥구 김진사의 집을 찾아갔더니 그는 남루한 김삿갓을 거지인줄 알고 그에게도 거지에게 주던 버릇대로 엽전 두 닢을 던져 주었다. 분하고 속상하여 즉석에서 이 시를 지어 대문에 붙이니 김진사가 이 시를 보고 자기 집에다 재우고 친교를 맺게되었다.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넘어와 옥구에 들어섰을 때는 가을도 이미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 해 가을에 전라도 일대에는 심한 흉년이 들어 김삿갓은 열 집, 스무 집을 다녀 보아도 하루 한 끼 얻어먹기가 어려웠다.
돈은 한 푼도 없고 날씨는 날마다 추워 오는데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은 아직도 여름옷 그대로였다. 눈앞에 닥쳐오는 엄동설한은 어떻게 넘길 것인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던가. 날마다 기아에 허덕이다 보니 이제는 좋은 경치만 찾아다닐 마음의 여유조차 없게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서 피골이 상접해 오는데 몸이 야위어 올수록 추위가 더 혹독하게 느껴진다. 구걸 생활을 30여 년이나 해 왔건만 이때처럼 혹심한 고초를 겪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김삿갓은 추위를 참고 견디다 못해 어느 집으로 찾아가 이런 사정을 해 보았다.
“지나가던 나그네올시다. 감기에 걸려 열이 심하니 하룻밤 잠 좀 자고 가게 해주십시오.”
“여보시오, 사람이 야박하게 잠만 어떻게 재워줄 수 있소. 올해는 흉년이 심해 우리도 지금 밥을 굶고 있다오. 이 마을 어디를 가도 얻어먹을 집은 없을 것이오. 여기서 고개를 하나 넘어가면 김 진사라는 부자 댁이 있소. 그 집에 가면 돈도 많고 쌀도 많으니 그리로 가보시오.” 한다. 별로 험한 고개도 아니건만 고개 하나를 넘는데도 힘이 몹시 겨웠다. 고개 위에서 바라보니 과연 산 밑에 고래등 같이 커다란 기와집이 한 채 있었다.
‘저 집이 바로 김 진사 댁인가 보구나. 저만한 부자라면 밥도 배불리 먹여주고 잠도 따뜻하게 재워주겠지.’
김삿갓은 울렁거리는 흥분을 느끼며 김 진사 댁 대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탕건을 쓴 60 가까운 늙은이가 대문을 살며시 열고 내다보며 매우 냉담한 어조로 묻는다.
“누구를 찾소?” “저는 지나가던 과객이옵니다. 하룻밤 신세를 좀 지게 해주십시오.”
김 진사는 아니꼬운 듯 시덥잖은 눈으로 바라보며 엽전 두 닢을 꺼내 손에 쥐어주며,
“내 집에서는 사람을 재워줄 형편이 못 되오. 이거 가지고 어디 가서 술이나 한 잔 드시오.” 하며 대뜸 대문을 잠가 버린다. 김삿갓은 손바닥에 놓인 엽전 두 닢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까닭 모를 분노와 함께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김 진사라는 자가 너무도 원망스러워 바랑(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주머니) 속에서 붓을 꺼내 대문 한복판에 주먹만 한 글씨로 시를 한 수 후려 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