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원에 널려있는 고대 동이족 피라밋 무덤군(고조선 고구려식 적석총)들.. 한자의 기원인 동이족 은(상)나라의 갑골문.. 요 순 공자 맹자 묵자 백이 숙제 강태공 전부 동이족 출신이다.. 고조선 문명의 발상지 요하(황하문명보다 1000년앞선 요하문명.홍산문화)부근에서 발견된 기원전7000년경에 만든 용(龍)문양 신석기유적.. 우리는 고대로부터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식한 한족(화하족)들에게 문화적으로 참 많은 것을 전수해 주었다.. 서융(또는 동이)족의 진나라, 선비족의 전연 후연 북위 수나라 당나라, 거란족의 요나라, 여진족의 금나라, 몽고족의 원나라, 만주(여진)족의 후금(청나라).. 한족국가는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 3개정도..
진(秦)나라가 우리민족(동이족)인 근거
(1) 우리민족 전통의 풍습인 상투입니다.
(아래 사진 참조,병마용갱) 우선 최소한 반드시 거치게 되는 현재의 국사책에서도 보실수 있듯이 상투는 우리민족의 전통 풍습입니다.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기전에 우리민족으로 변장한 후에 (상투를 틀게 됩니다.) 상투를 틀고 찾아온 위만을 준왕은 굉장히 기쁘게 맞고 수비대장으로 임명합니다. 그러나 후에 반역으로 인해 물러나게 됩니다.
위의 이야기를 보듯이 화하인과 주신(조선)의 차이는 상투입니다. 위만은 본래 연나라 사람으로서 확실한 화하인입니다. 그러할진데 스스로 상투를 틀고 우리민족으로 귀화 당시 조선에 찾아오니 준왕이 기쁘지 않을수가 없었던 것이죠..(^^)
화하가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찾아오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상투는 본래 우리민족을 나타내는 전통 풍습임을 알게 해줍니다.
(2) 신라[新羅]와 가야[伽倻] 진[秦] 나라는 조상이 같다.
『좌전(左傳)』에 따르면 "진(秦)은 소호(少昊)씨의 후예다."라고 합니다. 소호씨에 대해서는 밑의 산해경에서 나오게 됩니다. "진(秦)나라의 선조는 황제 전욱 고양씨이며, 묘족의 후예다. 진나라와 조(趙)나라는 모두가 모계혈통이나 그 모계이 아버지는 전욱이다. ~ 소호씨는 영씨 성을 가진 족(族)으로 곧 조(趙)나라, 진(秦)나라 조상의 할아버지가 소호(少昊)씨이다. - 사기 진본기(史記 秦本記)"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손이어서 성(姓)을 김씨로 하였다(新羅人自以少昊金天氏之後 故姓金氏 : 『삼국사기』百濟本紀 義慈王)"
김유신 열전을 보면 김유신의 12대조는 수로왕이라 합니다. 신라 사람들이 자칭 "소호 금천씨의 후손"이라 하여 "김(金)"으로 성을 삼았고 김유신의 비문에도 "황제 헌원의 후예"요, 소호의 직계라고 하였으니 가야 시조 수로는 신라와 동일한 성씨라고 볼수 있습니다.
당시 신라사람들 중 김(金)씨들은 자신들을 진시황(秦始皇)과 연결 시켰습니다. 다른 기록을 볼까요?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의 12대조는 수로왕인데 황제(黃帝) 헌원의 후예요, 소호의 직계다.(羅人自謂少昊金天氏之後 故姓金 庾信碑亦云 軒轅之裔 少昊之胤 則南加耶始祖首露 與新羅同姓也 :『三國史記』金庾信列傳).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워낙 진나라 자체가 관심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삼국사기의 내용을 보듯이 김수로왕께서 소호의 직계라고 합니다. 또한 헌원의 후예라고도 합니다.
1977년 7월 14일자 중공 신문인 광명일보를 보겠습니다. "산동 반도 지역에서 남한 넓이 만한 광대한 지역에 이르는 대문구 문명권 (大汶口文明圈) 을 발견했는데, 이곳을 발굴하니 문자가 나오고 그 곳을 통치한 소호씨 (少昊氏) 란 통치자이름이 나왔다.이것을 방사선 탄소 측정을 해보니 당시 1977년으로부터 5785 년전 것이다. 이라 하였습니다.
고사변(古史辯)만 보더라도 백화문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보면 "소호씨는 동이계야 (東夷系也), 동이지인 (東夷之人) 이라" 고 나옵니다. 또한 태호 복희씨와 여와씨 또한 소호씨가 동이계열이라 말하였습니다.
이제 산해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동해 밖의 먼 곳에 소호의 나라가 있고 그의 왕국은 온갖 새들이 나라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새들의 나라 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던가 혹은 최근에 인기리에 종영된 '주몽'을 보신분이라면 우리민족은 새를 숭상하였고 삼족오를 모셨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그리고 당시의 기록들은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묘사를 하던가 합니다. 예로 박혁거세나 김알지 같은 분들의 경우도 출생부분은 거의 신화로 나타나 있죠..^^
보통 소호씨를 화하족과 연관시키는 분들이 가끔 계신데 화하족은 뱀을 숭배하는 민족입니다.(그래서 화하족은 용을 숭상하죠. 용(龍)이란 계념도 고조선의 홍산문화에서 나와 화하족에게 전파되었지만..) 새와 관련된것은 전혀 없습니다.
위의 내용에 있듯이 신라-가야-진 나라는 뭔가 연관성이 있는듯 합니다. 위의 기록만 참고하자면,
진시황(秦始皇,진) - 김일제,김알지(신라) - 김수로(가야) 라는 공식이 성립합니다. 사실 이부분에 대해서는 김일제 이전의 것들은 고증이 어렵기에 좀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당시 신라인들과 가야인들은 스스로를 소호씨의 후예라 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판단은 여러분께서 하시면 됩니다. 글 마지막 부분에 읍제국가 형식으로 공통된 정치형태를 말씀드리겠지만 민족을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혈통(血統)이라 생각합니다. 그 다음이 문화일것입니다. 그래서 원나라가 고려가 요(遼)처럼 화하에게 동화되지 않도록 그렇게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3) 진[秦]나라는 당시 오랑캐라 불리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책 혹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다보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 진[秦]나라가 화하(한족) 최초의 통일국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당시 화하족의 나라들이 진나라를 서융(西戎)이라 불렀습니다. 진나라의 서융은 동이족의 일파가 정치적인 이유로 서쪽으로 이주하여 형성된 민족으로 중국사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설은 서융족을 흉노의 일파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이는 신라왕실의 시조 남흉노의 왕자 김일제와 관련된다)..
당시 화하족들이 진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유목민족인 서융 이라고 한것으로 보아도 알수있습니다. 서융은 당시 우리민족과 같은 유목민족이었습니다. (조상이 같은데 화하족과 같이 농경민족이 될리가 없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화하인들이 그렇게 오랑캐라 욕하였던 진[秦]나라가 화하인들의 나라로 편입됩니다..
(4) 고조선 고구려의 적석총과 같은 피리미드 무덤 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