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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용갱의 진시황릉은 가짜.. 진짜 주인은 단군조선(동이족) 왕의 무덤이다.

김참봉 2022. 2. 8. 19:46

병마용갱에서 출토된 토용의 모습을 보면.....모두 상투를 틀고있다.  진시황시대의 중국 남자들은 상투를 틀지 않았다.

머리를 땋아서 아래에서 위로 묶는....상투의 오래전 모습은 단군조선 동이족의 전통이었다.

 

진시황(BC259~BC210)은 자신이 죽지 않을려고 불로초를 구하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인물이었다. 

나이 40도 되기전에 죽음을 준비하여 무덤을 만든다는 것은 모순이다.

14세에 진왕 즉위(BC246), 39세에 천하통일하고 진시황 등극(BC221), 천하통일 11년후 50세에 사망(BC210)하였다.

둘째아들 호야가 뒤를 이었으나 각종 내란와 우환에 휩싸였고 4년후 진나라는 2대(호야)에서 망하고 만다.

진시황의 전 통치기간 37년 중에서 11년 동안만 진시황으로 통치하였다.

그러므로...그런 무덤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물론 만리장성을 완성했다는 것도...어불성설이다.

 

출토된 말에서 쓰이는 장신구는...전형적인 단군조선의 유물의 형태들이다.  그 병마용갱이...진시황의 무덤이라는 증거는....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서안이 단군조선의 영토였는가?

 

서안 남쪽에서 대규모의 피라미드 군락이 발견되었다.....피라미드는....적석총이다.....동이족의 전통이다.

중국은 그 피라미드를 발굴하면서.....동이족의 유물이 대량 나오자.....도로 흙으로 덮었다.

심지어는 피라미드가 아닌것처럼 꾸미려 나무까지 심어놓기도 했다. 그 지역은....지금도 외국인 절대 출입금지 지역으로 묶여있다.   왜 그랬을까?   이쯤되면.....서안도 단군조선의 영토였음을.....추측하지 않을 수 없다.

47명의 단군들 중  누구의 무덤일까?  진시황의 무덤이 진짜라면 진시황은 동이족(단군조선)이다.

 

진시황은 동이족이다.

1973년  진시황릉을 재조사한 바 있는 전 북경대 화춘구교수(당시62세)는 1974년 중국 제1 언론사인 신화사통신 사회부 이귀형기자와 인터뷰에서, "진시왕은 동이족이었고, 유적은 모두 동이족 유적임을 확인하였다"고 인터뷰한 사실이 당국에 보고되어 1974~1975년 당국으로부터 당국에 먼저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년간 감금되었다가 하남지방 관리직으로 전출된 후, 5년후인 80년에 폐암으로 사망한 바 있습니다.

1979년4월, 이분이 삼우선생을 만나서, "중국대륙에서 우리 화하족역사는 천년이 안된다. 중국역사 4천년중에 조선(단조선)의 역사가 3분의 2가 넘으니 중국역사는 동이족의 역사다" 라고 하면서, "당국은 역사조작을 하려 하는데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이다." 라고 말한 사실이 육성녹음되어 있습니다.

상투는 동이족만의 문화이며...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진시황릉과 시안의 피리미드들은 모두 발굴중단 된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병마용은 진시황의 것이 아니다?

병마용은 진시황의 것인가 하는 내용의 기사가 중국 인민일보에 실리자 학술계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논란을 일으킨 주인공은 사학자도 아니고 고고학자도 아닌 건축학자 천징왠이다.  올해 69세인 천징왠은 1957년 서안건축공정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후,진시황릉에 대해 끊임없는 연구를 했었고 퇴직전까지는 강소성 국토국에서 근무했었다.

 

병마용에 대한 그의 의혹은 병마용과 진시황릉이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점.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전차의 바퀴 간 거리를 똑같이 표준을 정해 통일했는데 갱내 어떤 전차들의 바퀴간 거리가 차이가 나는 점. 진시황시대의 사람들의 옷이 주로 검은 색이었는데 갱내 무사들의 전포가 칼라인 점. 또한 그 시대의 군대는 주로 보병과 기마병이었지만 갱내 군사진영을 보면 전차부대 위주로 편성된 점 등을 의혹으로 제기했다.

 

1984년 천징왠이 ‘대자연 탐색’이라는 잡지사에 그동안 수집한 증거들을 내놓으면서 병마용의 진정한 주인은 진시황이 아니고, "기원전 306년에 죽은 진선태후" 라는 글을 발표했다... 병마용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이 그 당시 소수민족을 닮았다고 하면 병마용이 초나라 사람인 진선태우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의 글은 나오자마자 바로 여론의 파도에 잠기고 말았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로 이젠 퇴직했지만, 평생 병마용을 떠나지 못한 천징왠 학자는 지금도 병마용에 관한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