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비단 창가에서 마주앉아 희롱을 하다보니
교태를 부리는 듯 부끄러워 하는구나..
내가 좋으냐고 나직이 속삭이니
비녀를 만지작거리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네..
佳人 가인
抱向紗窓弄未休 포향사창롱미휴
半含嬌態半含羞 반함교태반함수
低聲暗問相思否 저성암문상사부
手整金釵小點頭 수정금채소점두
*抱(포):안다 紗(사):엷은견직물 비단 含(함):머금다 羞(수):부끄럽다 暗(암):몰래 어둡다 相思(상사):서로 생각하고 그리워함 整(정):가지런히 하다 釵(채):비녀 點頭(점두):(승낙하거나 찬성하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이다
*가련(可憐)은 김삿갓이 언제 떠나갈지 몰라 불안하여 그를 오래도록 붙잡아 두기 위하여 날마다 그가 좋아할 만한 경치 좋은 곳을 찾아 관광안내에 나섰다. 가련(可憐)은 기녀(妓女)답지 않게 흥청거리는 사내를 백안시(白眼視=업신여기거나 냉대함)하며 고고하게 살아온 여자다. 그러나 김삿갓만은 그의 시에 반하여 미칠 듯이 좋아하였다.
김삿갓도 가련(可憐)을 사귀어 볼수록 그에 대한 정이 깊어 갔다. 어느 날 밤에는 마루에 나란히 앉아 달을 바라보며 인생(人生)을 논하고 시를 말하다가 '자네는 나하고 있는 것이 그렇게도 좋은가.' 하고 물었더니 가련(可憐)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웃음 지은 채 비녀만 매만지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흘러나오는 시였지만 과연 김삿갓이었다. 반함교태반함수(半含嬌態半含羞)라. 동양미인(東洋美人)의 아름다운 자태(姿態)를 이처럼 멋지게 그려 낸 시가 또 다시 있을까. 그 시를 들은 가련(可憐)은 방으로 달려가 지필묵(紙筆墨)을 가지고 나와서 그 시를 바로 써 달라며 자기가 써서 걸었던 춘계문답(春桂問答) 족자를 떼어 버리고 삿갓어른의 시와 친필(親筆)을 걸어 놓고 싶다고 했다.
'이 사람아! 글씨는 자네 글씨가 더 좋은데 그 좋은 족자(簇子)를 왜 떼어 버리겠다는 것인가.' 하고 물으니 '그 족자는 아무 사연도 없는 무의미한 것이옵니다. 삿갓 어른의 친필(親筆)과 시를 두고두고 감상(鑑賞)하고 싶사옵니다.' 하고 대답한다. '허허~ 자네가 갈수록 사람의 간장을 녹여내네그려.' 하고 김삿갓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일필휘지(一筆揮之)했으니 그 필적 또한 천하명필(天下名筆)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