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22편]불충 저지른 김익순 시제로 구구절절 분노 조부라는 사실 모르고 一筆揮之

김참봉 2010. 11. 16. 12:01

시상(詩想)을 정리한 병연은 눈을 뜨고 주위를 한 바퀴 들러본 후, 벼루위에 놓인 붓을 들고 화선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日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일이세신김익순   정공불과경대부 

將軍桃李농西落   烈士功名圖末高     장군도리농서락   열사공명도말고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溪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계
 

宣川自古大將邑   比諸嘉山先守義     선천자고대장읍   비저가산선수의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葛亮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동조구신정충신   저장풍진입절사

嘉陵老吏揚名旌   生色秋天白日下     가릉노리양명정   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   骨埋西山傍伯夷     혼부남 부반악비  골리서산방백이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錄臣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록신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가성장동갑족김   명자장안항렬순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불하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吾王庭下進退膝   背向西城凶賊脆     오왕정하진퇴슬   배향서성흉적취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大王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말하노니 너 국은을 입어 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鄭公)은 한갖 경대부의 몸이지 않았느냐 
농서에서 항복한 한나라의 이능과 같으니 
충신 열사들 가운데 공과 이름이 서열 중에 으뜸이다.
시인도 이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노니
칼을 어루만지며 이가을날 강가에서 슬픈노래부른다.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맡아보던 고을이라
가산 땅에 비하면 먼저 충의로써 지킬 땅이로되
청명한 조정에 모두 한 임금의 신하로서
죽을 때는 어찌 두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태평세월이던 신미년에
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가.
주(周)나라를 받드는 데는 노중련 같은 충신이 없었고
한(漢)나라를 보좌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
우리 조정에도 또한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고 죽었도다.
늙은 관리로서 구국의 기치를 든 가산 군수의 명성은
맑은 가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 같았노라.
혼은 남쪽 밭이랑으로 돌아가 악비와 벗하고
뼈는 서산에 묻혔어도 백이의 곁이라.
서쪽에서는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오니
묻노니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이더냐?
가문은 으뜸가는 장동(壯洞) 김씨요
이름은 장안에서도 떨치는 순(淳)자 항렬이구나.
너희 가문이 이처럼 성은을 두터이 입었으니
백만 대군 앞이라도 의를 저버려선 안되리라.
청천강 맑은 물에 병마를 씻고
철옹산 나무로 만든 활을 메고서는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 무릎 꿇듯이
서쪽의 흉악한 도적에게 무릎 꿇었구나.
너의 혼은 죽어서 저승에도 못 갈 것이니
지하에도 선왕들께서 계시기 때문이라.
이제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육친을 버렸으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너는 아느냐?
너의 일은 역사에 기록하여 천추만대에 전하리라

 

그는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써내려갔다.

그야말로 일필휘지(一筆揮之였다.

병연은 화선지 가득히 글을 마치고 붓을 벼루위에 가지런히 뉘어 놓고, 처음서부터 글자 하나하나를 되뇌이며 훑어보았다.

그는 글을 모두 훑어보고는 흥분된 상태에서 다시 붓을 잡았다.

붓을 잡은 그의 손은 가볍게 떨렸다.

그것은 아직도 불충을 저지른 김익순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병연은 붓을 든 채 다시 훑어보며 퇴고를 하려했지만 여기에서 더 호되게 몰아친다면 시적인 정서를 해칠것 같았고, 제한된 구(句)를 벗어나지 말아야 된다는 경각심에서 조용히 붓을 내려놓았다.

출처 : 난고 김삿갓 기념화사업회
글쓴이 : 임종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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