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24편]유배된 단종의 고된 귀양살이 청령포 둘러보며 가슴에 담아

김참봉 2010. 11. 16. 12:02

 

 

그는 50대가 넘어 보이는 중늙은이였다.

늙은이가 소유한 조그마한 배안에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도구가 실려있는 것을 보아 아마도 이곳에서 청령포를 지키며 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잇는 늙은이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 배로 청령포에 건너갈 수 있습니까?"

"돈만 주면 가지요. 하지만 지금도 단속이 있기는 하오만, 예전에는 이곳 청령포에 사람이 얼씬도 못하게 했구먼."

늙은 사공은 선뜻 대답해놓고 병연의 차림새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청령포는 뭣 하러 가려우?"

"네. 단종 임금이 숙부에 의해 유배된 곳이라 둘러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뱃삯은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두 닢만 주쇼. 건너가서 나도 한바퀴 둘러 볼 테니."

병연은 서슴없이 엽전 두 닢을 꺼내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보아하니 젊은이 같은데, 어디서 왔소?"

"네. 삼옥리에서 왔습니다. 오늘 관풍헌에서 치루는 백일장에 왔다가 청령포와 관풍헌과 연관이 있어서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과장에 오셨다구? 그래 과거시험은 보지도 않구 여길 왔구만."

노인은 '그러면 그렇지. 주제꼴 보아하니 관풍헌에서 치루는 과객은 아닐 것 같고, 그저 하릴없이 쏘다니는 건달패겠거니'생각했다.

그는 오늘 아침에 백일장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입은 화려한 옷차림의 행렬을 보아온 터라, 짚신에, 두루마기에, 허름한 갓을 쓴 병연을 과객으로 봐주지 않았다.

"아니오. 백일장에 들어가서 글을 쓰고 나오니 발표하는 시간이 많이 남아 어린 단종 임금의 애사(哀史)가 서린 이곳 청령포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아아 그러오. 아직도 과거시험장에선 글쓰기가 한창일텐데... 젊은이는 천하문장인가 보군."

노인은 말마다 백일장을 과거시험이라고 말했다.

그는 병연을 쳐다 보지도 않고 놋대로 물결을 가르며 탐탁치 않게, 마치 빈정거리듯 한마디 내뱉고 힘주어 노를 저었다.

서강은 제법 넓었다.

마치 거대한 강이 범람하여 두 골짜기를 물로 채운 듯 잔잔히 흘렀고 수심도 깊었다.

배가 청령포에 닿자 노사공은 재빨리 밧줄을 물가의 큰 돌에 감아서 묶더니 앞서서 울창한 소나무 숲속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웅장한 느낌마저 주는 솔밭 속에는 기와집 한 채와 초가집 한 채가 기울어지듯 지탱하고 있었다.

"저 집이 단종대왕이 이곳에 갇혀 귀양살이 하시던 집이구만."

노인은 손가락으로 쓰러져가는 집을 가리켰다.

집 앞에는 조그마한 비각 안에 비석이 서있어 가까이 가서 비문을 보니,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地)'라 새겨져 있었다.

이 글은 영조 임금의 친필로 하사한 글로서 그 당시 단종의 유배지였던 옛일을 전하는 비문이었다.

"저쪽에도 비석이 또 하나 있소. 그리고 이곳에는 관음송,망향탑,노산대가 있으니 따라 오우."

북쪽으로 얼마 안가서 비석하나가 자연석을 머리에 이고 우뚝 서 있었다.

병연은 '금표비(禁標碑)'라 쓴 비석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새겨진 글을 읽어 보았다.

'東西三百尺 南北西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동서삼백척 남북서백구십척 차후니생역재당금)'이라 기록돼 있었다.

"이 글의 뜻은 단종 임금이 이곳에 유배되어 거처했던 곳으로, 외부인이 청령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금지령으로 알겠지만, 그와는 상반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금표비는 유배된 단종 임금이 이 청령포에서 동에서 서쪽으로 삼백 척을, 남에서 북쪽으로는 사백구십 척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으로, 이른바 단종 임금이 이곳에서의 행동반경(行動半徑)을 제한하는 금지령이 담긴 팻말로 보아야 합니다."

병연은 서슴없이 금표비에 적힌 글을 읽고 해석까지 해 주었다.

노사공은 적지 않은 그의 학식에 놀랐다.

지금껏 이곳에서 나룻배를 저으며 물고기도 잡으며 외간손님도 건네주고 살아왔지만 금표비의 뜻을 몰랐었는데 병연의 해설로 알게 된 것이다.

 

 

 

 

 

출처 : 난고 김삿갓 기념화사업회
글쓴이 : 임종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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