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조선시대 과거제도(사마시,대과)

김참봉 2019. 7. 20. 09:52

1.사마시(소과)란 과거의 예비시험으로 고려시대에는 국자감시(진사시) 승보시(생원시)라 했습니다.
사마시(생진과)는 3년에 1회 식년시로 행해졌으며  진사시와 생원시를 합쳐 사마(양)시 또는 생원진사시(생진과)라 칭하였습니다.  진사시[(부(賦)와 시(詩)의 제목으로 문예창작 재능시험)] 혹은 생원시(유교경전에 관한 지식시험)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과 하급관원으로 입사할 자격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또한, 선비로서 사회적 지위를 공인 받았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성균관에 들어가지 않는 생원 진사들은  참봉 훈도등 정9품또는종9품직를 제수 받는경우도 있었으며,  대과(문과)를 단념한 진사 생원는 지방의 관원으로 지도자로서 군임하기도 했습니다.

사마시에는 초시와 복시에 걸친 두번의 시험을 거치게 되어 있었는데..  초시는 한성시에서 200명 향시에서 500명으로 생원과 진사 각각 700명(총1400명)을 뽑았다.   복시는 초시합격자 1400명에 한성에서 100명을 추가해서 응시자가 1500명이었으며,  다시 성균관에 모여 200명(진사100명, 생원100명)을 추리게 되는 복시로 마무리 됩니다. 
 
2.대과(문과)는 3년에 1번 실시하는 정기시험인 식년시가 기본이지만 부정기시험(증광시,별시,알성시 등)도 많았습니다.

대과는 초시(초장,중장,종장)와 복시(초장,중장,종장), 전시의 세 단계를 거치는데..  조선초기에는 성균관에서 공부한 사람(관시 합격자)만 대과 복시를 칠 수 있었지만, 세조 이후에는 한성시나 향시 합격생도 응시가 가능해졌습니다.

사마시(소과)를 보지않고 바로 대과(문과)만 봐서 합격할수있었지만 승진이 빠르고 높은 관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소과 합격후 대과를 보는것이 관례였습니다.  대과에 응시할 자격을 가지는 부류중에 소과 합격생,유학,현직 관료가 있는데 여기서 유학이 바로 "생원진사나 현직관료 이외 과거를 준비하는 유생(儒生)"이라는 뜻입니다.
초시에서 각 도의 인구 비례를 고려하여 240명[(성균관(관시) 50명, 한성시 40명, 향시 150명(경기도 20명, 강원도 15명, 황해도 10명, 충청도 25명, 경상도 30명, 전라도 25명, 평안도 15명, 함경도 10명)]을 1차로 선발하고, 복시에서 그 중 33인을 선발하였고, 전시에선 등수를 결정해서 관직의 품계를 정하였다.

전시는 복시에서 최종합격한 문과33명(무과28명)이 임금앞에서 치르는 순위결정시험으로 1등인 장원을 포함한 갑과 3인, 을과 7인, 병과 23인을 정하였다. 

무과는 문과(대과)시험과 같이 3년에 1번 실시하는 식년시가 기본이지만 부정기시험(증광시,별시,알성시 등)도 있었다. 

문과와 같이 초시·복시·전시 3단계로 치러 졌으며  무과 전시에서도 역시 장원을 포함한 갑과 3인, 을과 5인, 병과 20인을 정하였습니다. 초시에는 원시(院試)·향시(鄕試)가 있어 원시는 훈련원(訓鍊院)이 주관해 70인을 선발하고, 향시는 각 도의 병마절도사가 주관해서 모두 120인을 선발하였다. 복시는 다음해 봄 초시 합격자 190명을 한성에 모아 병조와 훈련원이 주관해 강서(講書)와 무예를 고시, 28인을 선발하였다.

 

문과 장원 1인은 종6품직, 갑과 2인은 정7품직을 실직(實職)으로 주었으며, 을과 7인은 정8품계를, 병과 23인은 정9품계를   그리고 무과 갑과는 종7품계를, 을과는 종8품계를, 병과는 종9품계를 주었습니다.

급제자가 이미 관품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장원인 경우 4계를(문과의 경우), 갑과인 경우 3계를, 을과인 경우 2계를, 병과인 경우는 1계를 각각 그 관품에서 더 올려주었다. 올린 관품이 받아야 할 관품과 같을 때에는 거기에서 1계를 더 올려주었다. 그리고 당하관의 맥이 찬 사람은 무조건 당상관으로 올려주었습니다.  그리고  10년마다 병년에 문관 당하관에게 보이던 승진시험인 문과중시(文科重試)도 있었습니다.
잡과(역과,율과,의과,음양과)에서는 전시는 치루지 않았습니다.

대과(문과)의 경우로 살펴보자면..
양반의 자제가 생원시 혹은 진사시인 사마시(생진과)를 거쳐(보통 진사시를 많이 봤다고 합니다)
대과에 급제하여 관리가 되기까지, 총 5번(9번)의 시험을 치르게 되는 겁니다.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 유명한 율곡 이이는 말 그대로 과거시험에서 9번 모두 장원을 했다 하는데, 여기서 9번은 정말 과거시험 자체를 9번 본 게 아니라  과거시험의 여러 예비시험(생진과 초시 복시 2번, 대과 초시의 초장 중장 종장 3번, 대과 복시의 초장 중장 종장 3번)과 본시험(대과 전시 1번)을 아울러 9회 장원을 했다는 말이다. 

 

사마시(소과)의 초시 응시자와 대과(문과) 초시 응시자의 수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사마시의 복시 응시자는 1,500명이고  대과 복시 응시자 240명에  문과의 최종 합격자는 33명이니..첫 시험부터 따진다면 경쟁률은 어마어마 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