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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동김씨 가문의 성장과 번영

壯洞金氏 家門의 成長과 繁榮 조선시대의 유수한 名家들 중에서 (新)安東金氏만큼 다방면으로 얘기되는 가문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안동김씨 역시 하나의 작은 家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안동김씨가 조선후기 정치․사상․문화계에 남긴 족적은 실로 지대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안동김씨 一門의 향배는 조선후기 왕조사의 흐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사실이었다. 흔히 (신)안동김씨라고 하면 ․․이라는 단어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심한 경우에는 안동김씨를 권력독점과 부정부패에 따른 망국의 장본인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조선후기 300년에 걸친 (신)안동김씨의 정치적인 희생과 문화․학술계에 미친 공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사람은 드물다. ..

나의 이야기 2019.07.03

18대조부..11세 장령공(諱영수)할아버지

김영수 (1446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검색하러 가기 김영수(金永銖, 1446.8.19 ~ 1502.7.12)는 조선 전기의 무신(武臣)으로 자 적옹(積翁)이며, 본관은 (신)안동이다.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태사공 김선평(金宣平)의 11대손이다. 현조는 판예빈시사 김근중(金斤重), 고조부는 중현대부(中顯大夫) 전농정(典農正) 김득우(金得雨), 증조부는 수의교위 호용순위사 우영랑장 겸 합문 봉례랑(修義校尉 虎勇巡衛司 右領郞將 兼 閤門 奉禮郞) 김혁(金革), 조부는 비안현감 김삼근이다. 아버지는 한성부 판관(漢城府 判官) 김계권(金係權)과 예천권씨(이조판서 권맹손의딸)사이에서 정통11년(1446) 8월19일 서울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생 애[원본 편집] 어려서부터 무예..

나의 이야기 201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