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2편]양주 회암리에서 태어난 김삿갓 생가복원 추진 발빠른 움직임

김참봉 2010. 11. 16. 11:56

 

 

이토록 세계인이 그의 시에 대한 높은 평가로 인정하는것은 그의 문장이 다양한 기교로 구성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말하자면 같은 글자를 반복적 강조로 시의 구성에 묘가 있고, 숫자로서의 뜻이 통하는 문자의 기교, 한문과 한글을 혼용해 시를 구성했는가 하면 한문을 언문의 발음으로 그 뜻을 전달했고, 또한 과거시험의 답안지적인 공령시도 30여 편이나 전해지고 있다.

해학과 풍자로서 한시의 관례나 격식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시의 형식들을 그의 독창적인 필체로 적극적으로 수용, 이를 대중화시켜 우리 문학사에 한 전통적인 특징을 남기고 그이 천재성을 거침없이 발휘했다.

고관대작의 명문대가에서 태어나 홍경래의 난으로 연루돼 폐족이라는 멍애를 쓰고 평민 이하로 전락된 그의 행적은 묘연할 뿐이다.

다행이도 김립에 관한 문헌으로 일부분이나마 알려진것은  『해동시선』,『대동시선』,『대동기문』,『 해장집』, 『녹차집』 등이 있다.  

그중 특히 신석우의 해장집이 비교적 상세하게 김립의 전기와 문학에 대한 평가를 기록하고 있다.

선생이 별세하신지 140여 년이 지난 지금 선생의 사망지는 전남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로, 그곳은 세곳에 기념비와 시비로 잘 다듬어졌고, 운명하신 집도 양도해 공원으로 꾸며졌는가 하면 초분지에도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선생의 유택은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노루목에서 유택을 발견해 생가는 물론 주변으로 4만2,900제곱미터의 땅을 확보해 김삿갓문학관을 건립했고, 묘소 주변은 공원화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베일에 쌓여 있던 김병연선생의 출생지에 관해 20여년 전 시인이자 영산대 교수인 정대구씨가 학위논문을 쓰면서 신안동 김씨 종친회(휴암공파) 사무실을 찾아 김삿갓의 출생지에 대해 문의하자 회장 김천한씨와 동석했던 김방한옹이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라고 선뜻 대답해 주었다고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김옹은 양주는 알아도 회천과 회암은 어느곳에 있는지 모른다.

오직 선대에서 알려준 선생의 태생지를 항상 가슴에 담고 있었을 것이다.

김립은 그의 시 조산촌훈장과 부벽루의 시 2편에서 시의 말미에 "楊州"라 썼는데 번역은 서울 아니면 의정부라 설명, 이것은 지명의 착각에서 오는 오역이라 본다.

2편의 시에서 라는 고유명사는 "난고평생시"에서 보이는 "한북"의 글자보다도 더 가까운 제1의 고향이 양주임을 암시해주는 대목이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다.

현재 양주시에서 김병연선생의 생가 터를 회암동에 확보해 놓았고, 난고 김삿갓기념화사업회장인 정재진씨와 사업회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양주가 낳은 천재시인 김삿갓 시선을 기리는 생가복원, 그리고 영원히 보전하는 길은 양주시민 전체의 몫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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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난고 김삿갓 기념화사업회
글쓴이 : 임종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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