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_daum->
대동법이란 쌀로 바쳐야하는 세법이니까 대다수 농민들은 쌀로 세금을 다 바치고 나면 잡곡으로 연명하며 어려운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벼슬아치들은 쌀밥에 고기반찬에 호의호식하면서 어려움을 모르고 그들의 자식 놈들까지 야외에 놀이 와서도 그러한 먹성이 이어지고 있으니 기막힐 일이 아닌가.
병연은 문득 집을 떠나던 날 조반을 먹으면서 모처럼 오랜만에 한줌의 쌀이 조금 섞인 밥을 병하에게 덜어 주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어린 병하의 입에도 쌀밥이 섞였다고 게걸스럽게 퍼먹던 아들의 모습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병연은 고기국과 밥그릇을 모두 비우고, 상위에 따라 놓은 술잔을 들고 마저 들이켰다.
배가 덜 차서 마시는 술은 아니었다.
이는 춘궁기에 가족들을 생각하다가 마음이 울적해서 술잔을 마저 비운 것이다.
"잘 먹었소이다. 먼 길을 오느라 시장기가 있어서....."
병연은 상을 비우고 나서 정중히 인사치례를 했다.
그들은 식사 중이라 잠잠히 기다리다가 식사를 마친 병연에게 말을 건넸다.
"김 선생. 어느 학자분에게서 학문을 익혔습니까?"
그들에게 어머님의 가르침을 받고 학문을 익혔다고 한다면 뒷일을 생각게 되는 빌미를 주기 때문에 그들에게 건네는 답변도 변명이 필요했다.
"네. 집안 어르신 중에 글 잘 아시는 분에게서 글을 조금 익혔습니다."
"조금이라니요. 이처럼 훌륭한 시상과 일필휘지로 쓴 글이 명필이었는데....."
"과찬이십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 분의 글이 더 화려한 시상의 글입니다."
병연은 그들이 이곳에서 각자 쓴 시문을 대충 훑어 본 터라 그들의 시상도 만만치 않음을 알고 칭찬의 말을 덧붙였다.
"아니오. 아니오."
안응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나서.
"김 선생? 선생의 시 한수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안응수는 병연의 시상(詩想)과 그가 지니고 있는 글의 범위를 알아보기 위해서 시 한 수를 더 부탁한 것이다.
안응수의 말과 함께 옆에 앉았던 신석우도 그의 시를 더 보고 싶어 병연에게 붓을 건네주었다.
병연은 붓을 받아서 한 수 쓰기로 마음을 잡고, 순간을 가늠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성안의 명문대가에서 온 사대부의 자제들일 터.
이들에게 나늬 시문을 보여주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기회임을 직감했다.
어쩌면 나의 시를 시험해 보려는 것일 지도 모른다.
"잘 쓰지는 못합니다만. 지금 제가 잡고 있는 '붓(筆)'에 대해 칠언율시(七言律詩)로 한 수 써 보이겠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그가 즉석에서 붓을 받아 쥐고, 거침없이 손에 잡은 붓에 대해 시제를 정하고 글을 쓰겠다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연은 화선지와 벼루를 고정시키고 붓을 잡았다.
四友相須獨號君 사우상수독호군
中書總記古今文 중서총기고금문
銳精隨世昇沈別 예정수세승침별
炎舌由人巧拙分 염설유인교졸분
畵出蟾烏照日月 화출섬오조일월
模成龍虎動風雲 모성룡호동풍운
管城歸臥雖衰禿 관성귀와수쇠독
寵擢當時最有勳 총탁당시최유훈
지, 필, 묵, 연의 사우(四友) 중에 너만은 군왕이라 부르니
붓은 고금(古今)의 천 만 권의 글을 모두 썼음이니라.
예리하고 정교함은 출세와 낙오를 구별하고
불꽃같은 혀끝의 기교로 사람의 됨됨을 분별한다.
두꺼비와 까마귀를 해와 달 아래 선명히 그려내고
용호(龍虎)를 그리면 마치 산 것처럼 풍운을 일으킨다.
힘을 다하고 쇄해 몽당붓으로 누었으니
총애로 선택된 지난날 그 공로 가장 크다 하겠다.
김병연이 단숨에 붓에 관한 시 한수를 써 내리자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과 입이 벌려진 채 그의 쉼 없는 시상과 필치에 또다시 탄복했다.
</!-by_daum->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39편]안응수의 집에 문객으로 들어간 병연은 그의 글방에서 많은 책을 접하게 되고... (0) | 2010.11.16 |
---|---|
[스크랩] [38편]병연의 글솜씨를 보고 감탄한 안응수는 자신의 집에서 함께 공부할 것을 청한다. (0) | 2010.11.16 |
[스크랩] [36편]병연은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시를 쓰고 그의 문장을 본 좌중은 탄성을 울린다 (0) | 2010.11.16 |
[스크랩] [35편]한양에 도착한 병연은 시회 장을 찾고 풍월을 읊던 선비들은 병연을 조롱하는데... (0) | 2010.11.16 |
[스크랩] [34편]눈물짓는 아내 등 쓰다듬으며 어머니께 큰절 올린 후 한양행 (0) | 2010.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