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5편]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양주를 떠나다

김참봉 2010. 11. 16. 11:57

 

 

 

 

잠시 후 대문이 열리고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대청 뜰 앞에서 멎더니,

"새서방님, 곡산서 소인 김성수가 왔사옵니다."

공포에 쌓여있던 김안근 내외는 곡산에 있는 종복 김성수임을 알아차리고 성급히 대청으로 나와 대청 문을 열었다.

김안근은 놀란 가슴만큼 김성수의 손을 덥석 잡고 성급히 건너 방으로 인도했다.

"그래 선천부사께선 어떻게 되셨나?"

거두절미하고 성급히 묻는 김안근의 물음에 김성수는 미간이 일그러지면서 힘없이 입을 열었다.

"홍경래의 난은 이미 끝났읍지요. 홍경래는 관군과의 싸움에서 사살되었고, 선천부사께서는 관군에게 체포되시어 홍경래에게 항복하고, 동조했다는 죄목으로 지금 서울의 의금부로 압송되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안방 노마님께서는...,"

"어머님은?"

"너무도 가혹하옵죠. 친정이신 경기도 광주땅의 관비로 명을 받잡고 지금 관군들에 의해 광주로 끌려가시고 계시옵니다."

김성수의 말이 끝나자 김안근 내외는 청천벽력을 맞은 듯 눈앞이 캄캄해졌다.

더구나 늙으신 어머니가 친정인 광주로 관비가 되어 끌려가시다니 자식된 도리로서 더더욱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엄연한 이 사실을 비켜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역적 죄인이면 당사자는 물론 삼족을 멸하는 형조에서 더는 이대로 버틴다는 것은 어린자식들을 죽음으로 밀어 넣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여보게 성수! 우리 저 어린자식들을 자네 자식처럼 감싸서 목숨만 부지하도록 해주게. 선대에 죄가 되지 않게, 후대가 끊어지지 않게 말일세." 

알량하던 사대부의 체면이 뿌리 채 뽑혀져 버리는 순간, 김안근은 노복 김성수의 손을 잡고 애원에 가깝도록 말을 건냈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소인의 집에선 도련님들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읍지요. 당장 오늘 밤으로 도련님을 모시고 떠나겠사옵니다."

멸문해가는 주인을 위해 끝까지 충복을 잃지 않고 따르는 그 마음씨가 재삼 고마움을 느끼게 했다.

어머니인 함평이씨는 언년이에게 서둘러 조반을 짓게 하고 두 아들이 입고 갈 두툼한 속옷과 머리에 감을 명주수건과 솜버선을 챙겨놓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두 아들을 깨웠다.

형제는 눈을 껌뻑이며 일어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요사이 부모님의 어두운 표정과 행동을 봐온터라 불평 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평소보다 더 굳어진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병연아, 지금 관서에서 난리가 나서 피신해야 한다. 그러니 형과 함께 김씨를 따라 곡산으로 떠나거라. 훗날 조용해지면 꼭 데리러 가마."

온 식구가 모여 언년이가 차려준 이쁜 조반을 마치자 담장 밖에서 첫닭 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떠나겠습니다. 날이 밝기 전에 양주 땅을 벗어나야 합니다."

김성수는 서둘러 일어났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같이 살게 될 김씨 아저씨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들이 무사히 살아 날 수 있는...."

김안근의 자식에 대한 당부를 뒤로하고 김성수는 서둘러 대문 밖을 나와 두 내외에게 인사를 하고, 김성수는 병하의 손을 잡고, 병연이는 덕삼이 등에 업혀 칠흑같이 어두운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출처 : 난고 김삿갓 기념화사업회
글쓴이 : 임종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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