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7편]양주 본가를 떠나 장장 5백리 험준한 고생길

김참봉 2010. 11. 16. 11:58

 

 

 

 

김병연 형제가 집을 떠난지 꼬박 열사흘 만에 황해도 곡산(谷山)에 도착하여 김성수의 집에 들게 되었다.

장정이 걸으면 그 절반의 날짜가 소요되겠지만, 이제 갓 8살과 6살의 나이인 병하와 병연에겐 엄두도 못낼 거리였다.

더욱이 철늦은 눈까지 내려 이들의 발길을 어렵고 더디게 했다.

일행의 행로는 양주 본가를 떠나 연천, 철원, 이천(伊川), 신계를 지나 곡산에 도착하기 까지의 장장 오백여리의 험난하고 먼 길이었다.

밤늦게 곡산에 도착한 병연은 잠자리에 누어 마식령산맥의 동정령 고개와 아호비령산맥을 넘을 때의 고통에 몸서리를 치면서 마식령산맥에 있는 주막집 할머니가 그의 머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집을 떠난지 이레가 되던 날 이천 북부의 동정령 고개를 들어서면서 조그마한 주막집에서 말린 무청을 넣고 끓인 된장국밥을 먹고 일어나려 하는데 주막집의 안주인인 노파가 비스듬이 누어 고통에 괴로워하는 어린 병하와 병연을 보고는 김성수의 발길을 잡았다.

어린 병연이 형제의 발 뒷굼치는 짚신과 마찰돼 헤진 버선 뒷굽이 온통 피가 흘러나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지쳐서 움푹 들어간 눈가에는 눈물이 말라붙어 얼룩졌고, 콧구멍에서 나오다 말라붙은 콧피자국, 입언저리가 터서 퉁퉁부은 입술, 모두가 처절한 몰골이었다.

"얘들 애비요? 내래 말 좀 들으시라요. 지쳐있는 아이들 데리고 재를 넘는다 생각해 보시라요. 동정령재 중턱도 못가 해는 지고 곧바로 어둡수다. 더욱이 이 동정령은 골이 깊어 어둡기가 무섭게스리 늑대와 여우들이 우글거린다우. 엽전이 없으면 공짜로 재워 줄 테니 오늘밤 여기서 푹 쉬고 내일 떠나슈."

그는 피신하는 처지에 병연이 형제를 길거리에서 하루라도 더 머무르는 것을 꺼려 걸음걸이를 재촉해왔다.

지금껏 오면서 병연이 형제는 힘에 겨워했고, 벗겨진 발 뒷굼치가 쓰라려 길가에 주저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럴 때마다 성수는 번갈아 업고 걸었다.

장정인 김성수도 힘의 능력의 한계를 느껴 셋이서 걷기를 반복했다.

김성수는 힘에 겨워 쓰러져 있는 병하와 병연이를 바라보다가 말을 건넷다.

"주모님 말씀대로 하룻밤 신세를 지겠습니다."

노파는 쾌히 승낙하며 장작불이 타고 있는 아궁이 앞에 거적을 깔고 병연이 형제를 데리고 와서 앉혔다.

노파는 혀를 차며 눈길에 젖은 버선을 벗기고 따뜻한 물로 얼굴과 손발을 씻겨 주고는 장독대에 가서 된장을 떠다가 낡은 천을 찢어 그곳에 된장을 발라 벗겨진 발 뒷굼치에 붙이고 천을 감아주었다.

주인노파는 두 형제를 안방으로 데리고 가서 따뜻한 아랫목에 요와 이불을 깔고 눕게 했다.

두 형제는 오랜만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푹신한 이불을 덮으니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병연은 며칠 전 그토록 인자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며 힘들었던 여정이 몰고 오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출처 : 난고 김삿갓 기념화사업회
글쓴이 : 임종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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