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권력의 실권을 거머쥐면서 60여년간 안동 김씨 세도정치 기틀을 만든 김조순의 영정
서북인의 차별대우와 삼정(三政)의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마침내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5살 된 김병연의 집안이 송두리째 뒤바뀐 운명의 갈림길이 됐고, 이로서 김병연은 사대부의 본가였던 양주의 집을 떠난 이후로 51년간을 조선팔도를 떠돌면서 주옥같은 시를 읊으며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생을 마감하게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고 11살된 어린 순조가 등극하면서 굳건했던 왕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때 김병연의 할아버지와 가까운 형제인, 도승지(都承旨)에 오른 김조순(金祖淳)은 1802년(순조2년) 자신의 딸이 순조의 비(순원왕후)로 간택돼 권력의 실권을 거머쥐면서 60여년이나 지속된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기틀을 만들었다.
정조의 뒤를 이은 순조 역시 어렸고, 이후의 군왕들이 나이가 어려서 왕을 대신해 김조순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이후 1837년(헌종3년) 김조근(金祖根)이 헌종의 장인이 됐고, 김조순의 아들 김좌근(金左根)이 10여 년간 영의정에 3번이나 오르면서 순조, 헌종, 철종에 이르기까지 안동 김씨라는 한 가문에 의해 이어지고 또 그들에 의해 정부요직이 독점되면서 위정자들의 부정부패가 극심해져 정치의 문란을 가중시켰다.
답안을 미리 적어 제출해 과거급제 대리시험, 매관매직, 차별 등 부패 만연
인재를 뽑는다는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과거시험은 공정성을 잃고 날로 부패해져 갔다.
권문세가의 어떤 자는이미 시관에게 시제를 알아가지고 답안을 적어 과장에서 제출해 과거에 급제하는가 하면, 시험성적이 좋지 못해도 권문세가의 자제가 급제하는 일이 빈번했다.
또한 그들에겐 대리시험이 성행했고, 과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시제(試題)가 잘 보이는 앞 자리에는 권문세가들이 진을 쳤고, 시골이나 지방에서 온 시험생들은 넓은 마당 뒤쪽으로 밀려 시제도 보이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며 통탄하는 시험생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심히 갈고 닦은 재주 있는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출세의 또 다른 방법으로 돈과 재물을 주고 매관매직(賣官賣職)하는 비리가 성행했다.
관리들은 더 높은 관직을 얻기 위해 재물을 쏟아 부었고, 축난 재산을 모으느라 혈안이 돼 있었다.
이러한 행동의 폐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농민들에게 돌아갔다.
관리들은 농지세에 부당하게 부가세와 수수료를 과도하게 부과했고, 전세(田稅)로 받는 곡식의 부패, 건조 등에 의한 감손을 보충하기 위해 더 거둔 세목을 <속대전(續大典)>에서 법조문화(法條文化)했다.
이는 세금을 부과하는 전세, 대동, 삼수미(三手米), 결미(結米) 등을 거두면서 자연 감축분과 운송비 등의 명목으로 추가로 징수하는 세목을 법제화해 이전보다 더 많은 세금을 바쳐야 하는 제도였다.
그 가운데 하나인 곡상미(斛上米)는 세곡(稅穀) 자체의 부패, 건조 등에 의한 감손을 보충하기 위해 세곡 1가마당 3되씩을 더 거두어 세곡과 함께 포장해 상납했다.
이것이 이른바 '삼정의 수탈과 탐학' 이었다.
이런 부당행위는 뇌물에 의해 관직을 얻은 관리들의 재산을 보충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순조 4년(1804년) 평양지방에 대화재가 발생해 가옥 수천채를 불태웠고, 강원도 강릉에서 통천에 이르기까지 영동지방에 큰 산불이 나서 수천호의 가옥이 소실돼 많은 인명피해와 이재민을 내었다.
그리고 1805년(순조5년) 정순대비 김씨가 승하하는 국상이 났다.
가뜩이나 나라 재정이 궁핍한 시기에 국상이 났으니 나라의 재정을 거의 쓸 만큼 돈과 재물이 들어갔다.
여기에 더해 가뭄과 홍수 같은 극심한 재해는 기아와 질병으로 온 나라를 뒤흔들었고, 몰락한 농민들은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고향을 버리고 혹자는 도둑의 무리로 발을 들여놓았는가 하면, 대다수가 품을 팔며 유민으로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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