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6편]양주 회암리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뒤로 하고...

김참봉 2010. 11. 16. 11:58

 

 

병연이는 덕삼이의 등에 업혀가면서 부모님의 뒷모습을 눈에서 잠시도 떼지 않았다.

눈물을 억제하시던 어머니의 옷소매가 눈가로 올라 눈물을 훔치는 것을 어렴풋 보았다.

그 뒤로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어둠속에서 사라져가는 마지막의 모습도 그의 기억을 영원히 지우지 못했으리라.

                                - 上略 -

4) 初年自謂得樂地 초년자위득락지 - 초년에는 나도 행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漢北知吾生長鄕 한북지오생장향 - 한북(漢北)땅이 내가 자란 고향.

5) 簪纓先世富貴人 잠영선세부귀인 - 벼슬 높던 조상들은 부귀한 사람들이고

    花柳長安名勝庄 화류장안명승장 - 영화롭던 장안서도 이름 높던 가문일세.

6) 隣人也賀弄璋慶 인인야하농장경 - 이웃 사람들 옥동자 얻었다고 축하해 주었고

    早晩前期冠蓋場 조만전기관개장 -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하였다네.

7) 鬚毛稍長命漸奇 수모초장명점기 - 자랄수록 운명은 점차 기박하여

    灰劫殘門飜海桑 회겁잔문번해상 - 오래잖아 멸족의 문중에는 상전(桑田)이 벽해로 변했네.

                                - 下略 -

어린 병연은 집을 떠나는 이 순간까지를 평생토록 잊지 않고 뇌리 속에 기억했다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생의 사양길에서 이 순간을 떠올리며 위의 '난고평생시'를 썼다.

철없을 때 종복 김성수를 따라야하는 공포의 야간 피신은 병연에게는 그의 생애의 첩첩산과 물을 헤치며 방랑인, 유랑인, 풍류인으로서 다가올 불행의 서곡이라 할 수 있다.

병연은 덕삼이의 등에 업혀가면서 공포와 무서움에 덕삼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가 곧 얼굴을 들어 어둠속에서 일행을 살폈다.

충성스러운 종복 김성수가 앞장섰고, 그 뒤에 형 병하, 그리고 배웅차 병연을 업고 가는 마음씨 고운 종복 덕삼이....

두려움은 잠시뿐 일행을 확인한 순간 두려운 마음이 가시었다.

앞장서 가던 김성수는 개성과 장단사이의 큰 길은 사람의 왕래가 많아 비교적 인적이 드문 이담(伊淡)을 지나 연천방향으로 가려고 천보산과 어등산 경계의 천보재를 오르고 있었다.

"천보산이 삼산이수(三山二水)의 명산이랬지?"

"아암요. 지난번에 새서방님께서 세 산이 두 물줄기의 가운데 솟아서 명산이라고 말씀해 주셨습죠. 이 말은 옛날 회암사를 지으신 지공선사께서 그런 말씀을 했다고 합디다요."

병연은 천보재를 넘으면서 뒤돌아 회암골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회암골은 짙은 어둠속에 쌓인채 다시 볼 수 없었다.

일행은 어둠을 뚫고 북쪽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한탄강을 건너고 제법 큰 마을을 지나고나니 날이 밝기 시작했다.

이곳이 양주땅의 끝이었고 마전(麻田)과 연천의 접경지였다.

"덕삼이, 자네 이젠 그만 돌아가게."

앞서가던 김성수는 걸음을 멈추고, 이곳까지 바래다주러 따라온 덕삼에게 돌아가라고 말하고는 덕삼의 등에서 병연이를 받아 업고 울음섞인 작별인사를 나누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출처 : 난고 김삿갓 기념화사업회
글쓴이 : 임종혁 원글보기
메모 :